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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년 전의 기억
  • 박종성
    조회 수: 202, 2018-12-08 01:04:44(2018-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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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년 전의 기억

    2018.12.05.

     

    1997년 11월21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가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달 미셸 캉드쉬 IMF 총재와 550억달러를 지원받는 내용의 구제금융합의서에 서명했다. 한국은 자금지원을 받는 대신 외국인 기업인수 허용, 부실은행 조기정리, 재벌기업 계열사 간 상호지급보증 중단 등을 포함한 가혹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의 축포를 쏜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최근 개봉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그날을 배경으로 한다.

     

     

    외환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당시 기업들은 차입을 통한 몸집불리기에 혈안이 돼있었다. 단기자금을 빌려 장기 시설투자에 쏟아부은 30대 그룹의 부채비율은 1996년 말 이미 382%에 달했다. 그런데 금융사들이 예상보다 빨리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문제가 생겼다. 종합금융사 등을 중심으로 자금 회수에 들어가자 한보를 비롯해 재벌기업들이 연쇄 도산했다. 여기에 태국발 외환위기에 기아차 부도가 겹치면서 외국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기회는 있었다. 관리가능한 위기는 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정권은 임기말 레임덕 시기였다. 노동법날치기, 기아차 사태의 매끄럽지 못한 처리는 식물정부임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무능했다. 외환보유액이 하루에 10억달러씩 줄어드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무능했고, 대통령선거를 앞둔 야권은 비협조적이었다. 외환위기의 본질은 ‘통치의 위기’였다. 확장하면 ‘위정자 집단의 무능’에 있었다.

     

     

    외환위기는 국민의 생활 전반을 뒤흔들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졌다. 위기 전 일자리는 인생을 바쳐야 할 터전이었다. 이후에는 언제라도 퇴출될 수 있는 ‘임시 일터’로 바뀌었다. 상시구조조정이 일상화됐고,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났다. 기업들은 효율화를 이유로 임시직을 늘렸고, 구직자들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기업들은 곳간에 돈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바람에 기업의 건전성은 높아졌을지언정 건전한 기업가 정신은 실종됐다.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보신 경영’이 자리잡았다. 현재 한국의 산업 지형도는 20년 전 그대로다. 생존기업은 그때의 구조조정 덕으로 살아남았다. 새로운 기업이 없으니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다.

     

     

    직격탄은 중산층 서민들이 맞았다.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살아남더라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명예퇴직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명분’으로 직장을 떠난 가장들은 벼랑에 섰다. 노동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었던 퇴직자들은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곳도 전쟁터였다. 많은 퇴직자들이 레드오션에서 연명에 급급하다가 퇴직금은 물론 살던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 “끝까지 회사에 버티고 남았어야 했다”는 후회만이 남았다.

     

     

    외환위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보수나 진보정권 모두 시민을 내세웠지만 중산층은 파산했고 빈부격차는 확대됐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청와대 내부 기강이 엉망이다. 대통령과 시민의 소통은 끊겼다. 정치권에서는 고성이 오갈 뿐 시민들을 위한 협치는 찾기 힘들다.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서민 생활은 어떠한가.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를 보면 일자리 정부라는 이름에 민망할 정도다. 경기 둔화 속에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40∼50대 실업자가 급증했다. 지난 10월 전체 실업자 규모는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장의 실직은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

     

     

    1998년 초 제일은행은 48개 영업점의 통폐합과 대규모 인력구조조정에 나섰다. 당시 폐쇄되는 서울 테헤란로 지점 소속 차장의 일상과 지점 직원들의 바람을 담은 26분짜리 비디오가 만들어졌다. ‘내일을 준비하며’라는 제목의 비디오는 나중에 ‘눈물의 비디오’로 더 알려졌다. 퇴직할 당시 상영했다가 좌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후 비디오의 출연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다. 그 영상의 주인공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나머지 행원들도 자영업에 뛰어드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 은행을 떠났던 사람들은 환경이 나아지면 복귀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런 경우는 없었다.

     

     

    21년이 흘렀다. 올해 구조조정이나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가게문을 닫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돌볼 안전망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이것이 비디오의 주인공들이 떠나며 기대했던 사회인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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