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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자들을 기억하라
  • 김택근
    조회 수: 93, 2019-02-16 00:14:38(2019-02-16)
  • ■죽은 자들을 기억하라

    김택근 시인

     

    지난 2년 동안 100년 전쯤의 역사를 더듬었다. 우리 근대사는 들어갈수록 어둡고 습했다. 더욱이 ‘3·1독립선언’ 부근은 쉽게 지나갈 수 없었다. 숱한 죽음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어떤 진혼가로도 잠들게 할 수 없는 죽음들.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의 표현대로 3·1만세시위는 ‘충(忠)과 신(信)을 갑옷으로 삼고, 붉은 피를 포화로 대신한 창세기 이래 미증유의 맨손혁명’이었다. 지도자도 없고 주도세력도 없었다. 모두 ‘대한 독립 만세’만을 외쳤다. 망국의 땅에서 백성들이 서원한 ‘육자진언(六字眞言)’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부르는 주문이기도 했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취조를 받던 양한묵(梁漢默) 민족대표가 급사했다. 아들은 고문으로 숨진 아버지 시신을 받아 인력거에 실었다. 눈물을 뿌리며 집으로 가던 아들은 종로 네거리에서 인력거를 세웠다. 그리고 홀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아버지가 왜 죽었느냐고 소리치던 아들도 결국 맞아죽었다.

     

     

    전라도 남원에서는 수만명이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흰옷이 물결을 이뤄 삼십리에 뻗쳤다. 왜경의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흰옷이 붉게 물들었다. 방(房)씨 성을 가진 사내도 그 자리에서 숨졌다. 비보를 접한 아내가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갔다. 왜병에게 붙잡힌 아내는 칼을 물고 자결했다.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노모 또한 하늘을 원망하며 목숨을 끊었다.

     

    “하느님이시여, 이 지경이 되도록 어찌 가만 계십니까.”

     

    평안도 철산에서 만세를 부르던 열네 살 소년이 총상을 입었다. 소년은 홀어미의 외아들이었다. 어머니 품 안에서 숨을 거두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가슴속의 피가 불덩이가 될 것이니 저들의 섬나라를 불태우겠습니다.”

     

     

    온 마을과 산하가 피로 물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지만 이름을 남긴 사람은 그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못했)다. 유일하게 박은식만이 바람이 전하는 소식을 모았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그야말로 피에 젖은 혈사(血史)이다. 늙은 학자는 ‘오장을 칼로 에어내는 듯하고 말보다 눈물이 앞서’ 붓 든 손을 떨어야 했다.

     

    그는 유일하게 당시 피해상황을 집계해서 역사에 남겼다. 독립선언 이후 3개월 동안 202만명이 넘게 집회에 참가해서 죽은 자가 7509명, 다친 자가 1만5961명이었다. 그러나 남모르게 죽어간 사람들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박은식은 조선인이었기에 죽어야 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경배하고 있다. 피를 닦아내고 역사 속에 누였다. 누군가 죽어서 만세시위는 혁명이 될 수 있었다.

     

    ‘저 풀을 보라. 들불이 다 불사르지 못한다. 봄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난다.’

     

    모든 사람을 다 죽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죽어서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결국 죽은 자들이 세상을 끌고 왔다. 죽은 자들이 낸 길을 따라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이름 없는 무덤, 허물어진 무덤을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독립투사 후손은 극소수이고, 친일파 자손들도 소수이다. 우리 대다수는 현실에 둔감하거나 용기가 없어서, 또는 운이 좋거나 비겁해서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다. 죽은 자들이 대신 죽어서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다.

     

    자신의 무덤을 박차고 나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살아도 죽은 이들이었다. 아픔과 한이 가득했던 무덤을 헤치고 나와 진실을 말하고 야만의 시간을 증언했다. 특히 김복동 할머니는 진정한 용서와 평화가 무엇인지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었다. 혼자였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무덤 속에 있는 전쟁 위안부 피해자들을 생각하며 단단해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들을 대신하여 주먹을 쥐고 당당히 외쳤다.

     

    산 자들이 김복동 할머니를 묻었다. 이제 할머니는 소원대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마 혼자만 저 하늘로 훨훨 날아가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는 말했다.

     

    “우리는 아직 해방을 맞지 않았다.”

     

     

    그 말이 어찌 일본만을 향한 것이겠는가. 실상 살아있는 우리에게 남긴 말이다. 아직도 제 나라와 민족이 귀한 줄 모르는 대한민국에 남긴 말이다. 할머니는 모두가 함께 날아오를 그날을 위해 자신의 날개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 날개는 맑고 고울 것이다. 저 차디찬 무덤 속의 할머니들이 모두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날은 언제인가. 수없이 많은 날갯짓으로 하늘이 열릴 날은 언제인가.

    봄이 오고 있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후 100번째의 봄, 죽은 자들을 기억하라. 그들의 말을 들으라. 그들이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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