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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중호의 세상보기

  • 2001년8월 ‘인천공항유휴지개발의혹사건’과 국중호
  • 조회 수: 3056, 2018-10-30 22:00:14(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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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8월 ‘인천공항 유휴지 개발의혹사건’과 국중호

     

    다음은 국중호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수 없는 2001년 8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유휴지 개발의혹 사건’ 과 관련하여 국중호가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를 기초로 이른바 ‘인천공항유휴지개발의혹사건’을 해부 정리한 것입니다. 

     

    훗날 완전무죄 판결이 난 이 사건의 방대한 수사기록을 보면, 검찰은 무엇인가에 쫓기어 반드시 국중호에게 무슨 혐의든지 반드시 죄를 뒤집어 씌워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한 흔적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신동아(2002년3월호).jpg 

     

    ● 국중호가 ‘인천공항공사’에 전화하게 된 동기

     

    1998년2월 정권이 바꾸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자 정치권은 물론 동창․동문․향우 등 수많은 지인들로 부터 주변의 억울한 민원 발생시 ‘청와대에 진정하면 해결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억울함을 호소해 오는 일이 많았다.

     

    DJ정부 초기 청와대 민원비서실에 접수되는 민원(진정․탄원․전화민원 등)이 매일 3,000여건 이상 되었으나, 청와대는 집행기관이 아닌 관계로 민원의 대부분을 관계부처나 일선 산하기관으로 이첩․통보하는 것이 통례이다.

     

    이른바 ‘인천공항유휴지개발의혹’ 사건은 국중호의 대학 동창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로부터, 인천공항공사의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자신들이 불공정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등의 하소연에 불과한 말을 듣고 처음에는 무시해 버렸으나, 대학동창 한모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공항공사 측에 세간의 소문을 전하며, “모든 참여업체가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심사가 되었으면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이고 의례적인 전화를 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려 했던 것으로, 어느 특정업체를 특별히 잘 봐달라는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고, 그런 말을 한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의 공소사실은 너무나도 추상적으로 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인천공항공사 이상호 사업단장에게 전화 할 당시(2001.7.12)에는 이미 평가단에 의해 평가가 완료(2001.7.10)되어, 특정업체가 사실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였음을, 이 사건이 언론에 이슈화 된 뒤 알았을 정도로 국중호는 사업자 선정에 관심이 없었으며, 이상호 피고인 또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개입하여 심사평가 결과를 뒤엎거나 조작할 권한도 없었던 시기였다.

     

    또한, 당시 이상호 피고인이 본인의 전화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다고 한다면, 제가 전화 할 당시 “이미 평가단에 의해 평가가 완료 되었다”는 말을 하였을 것이다. 본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이상호 피고인은 본인의 전화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며, 아울러 ‘국중호의 전화를 압력으로 받아 들였다’ 는 이상호 피고인의 진술은 모두 거짓말이다.

     

    또한 이상호의 주장처럼 청와대 민정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순간 매우 큰 심리적 부담이었고 압박이었다면 자신의 상관인 사장이나 감사에게 즉시 보고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함이 마땅하나,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국중호의 전화를 전혀 의식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상호는 국중호와 첫 통화(7/12)시 국중호의 이름을 『국진호』라고 메모(수사기록 701쪽) 할 정도로 국중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음

     

    이러한 모든 사실 정황이 2001.8.11.(토)새벽 검찰에서 검사 입회 하에 실시한, 이상호와 국중호의 첫 대질 심문시 이상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와 수사기록 702, 704, 705, 721면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702) 국중호씨와 아주 짤막하게 통화했다,

      (704) 전화하는 국중호씨의 태도가 상당히 부드러웠다,    

      (705) 국중호씨의 전화를 압력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리적 부담도 전혀 느끼지 않았다 

      (721) 국중호씨가 강동석 사장에게 압력을 행사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중호씨의 전화를 받고 압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을 받지를 못하였다.

              제가 기자를 상대할때 실수를 한 것 같다. 제가 그럴의도는 아니었는데 특별히

              국행정관에게 압력을 받거나 그런것이 아닌데 기자 앞에서 그 때 전화가 왔었던

              사실을 강동석 사장이 저에게 인사조치를 한 것에 너무 분개한 나머지 제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 기자에게 표현하다보니 이렇게 파문이 커져서 정말로 미안하다 등.

     

    그러나 인천공항공사 전 사업단장 이상호 피고인은 이후 구속영장실질심사 단계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진술을 번복하며 말을 수시로 바꾸고 있다. 이상호 피고인이 국중호의 전화를 “압력으로 느꼈다”고 해서 압력이 되고, “압력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해서 압력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 이상호 피고인의 진술 번복과 그의 부도덕성

     

    이상호 피고인은, 국회 김홍일 의원실 박상우 보좌관이 공항공사 강동석 사장에게 보직해임 당한 자신을 두둔하면서 “젊은 사람의 장래를 봐서라도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해 주십시오”하고 통화한 사실(강동석 검찰 진술기록 118면) 까지도 이를 악용하여,

     

    “대통령친인척인사(스포츠서울 윤흥열), 집권여당인사(김홍일의원실), 청와대인사(국중호행정관) 등이 강동석 사장에게 압력을 가하여 ‘에어포트72’를 밀고 있기 때문에 강 사장이 자신에게 부당한 청탁과 압력을 행사하였다”라고 한겨레신문 김도형 기자에게 인터뷰하여 언론에 문제가 되자,

     

    “단순히 공항 주변에 떠도는 소문을 이용하였으나, 집권여당 인사는 잘못된 것이고, 대통령 친인척은 윤흥열이라는 이름은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스포츠서울21’ 이라고만 말했다”고 변명(검찰 진술) 하는 등 입만 열면 말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다.

     

    또한 이상호는 “대통령 인척이 참여하는 ‘에어포트72 컨소시엄’이 탈락했기 때문에 강사장이 자신을 보직 해임한 것이 아니라, 지시불이행을 이유로 보직해임 시킨 것이다(수사기록 471쪽). 강 사장이 워낙 강한 성품이라 사장 스스로 자신에 대한 보직 해임을 단행 하였다고 본다”고 말하며 강 사장의 강직한 성품을 인정하면서도, “국중호가 강사장에게 압력을 가했기 때문에 강 사장이 흔들리면서 에어포트72 쪽으로 기울고 있다(수사기록 711쪽)”라고 말하는 등 모순된 진술을 하는등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인간이다.

     

    2001.8.11(토) 오후 인천지검 특수부 조사실 검사 앞에서 이상호는 국중호와 첫 대질심문시  “제가 기자에게 실수를 한 것 같다, 특별히 국중호씨에게 압력을 받거나 그런 것이 아닌데 강동석 사장이 인사조치 한 것에 너무 분개한 나머지 기자에게 표현하다보니 이렇게 파문이 커져서 정말로 미안하다”(▶수사기록 721~2) 라고 사과하면서 기자를 원망하기도 하였으나, 

     

    2001.8.13(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는 법정에서는 자신이 구속될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서 “국중호의 전화를 압력으로 받아 들였다”고 말을 바꾸었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줄곧 그렇게 주장하였다. 이상호는 상황에 따라 말을 수시로 바꾸는 참으로 정직하지 못한 나쁜 인간이다. 

     

    ※ 이상호의 진술번복 사례

     

    ① 8/11(토) 수사기록 705면 “국 행정관의 전화를 압력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고, 사장하고 사전에 얘기가 돼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② 8/11(토) 수사기록 721~2면(국중호와 이상호의 대질심문)

    “앞서 말씀드린 데로 국중호씨의 전화는 아주 부드러웠고 압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을 받지를 못하였습니다, 강동석사장과 교류는 있을지 모르나 압력을 행사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기자에게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특별히 국 행정관에게 압력을 받거나 그런 것이 아닌데 기자 앞에서 그때 전화가 왔었던 사실을 강동석 사장이 저에게 인사조치 한 것에 너무 분개한 나머지 제가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 기자에게 표현하다보니 이렇게 파문이 커져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③ 8/13(월)13:00. 구속영장실질심사 직전(기자들 앞에서)   “국중호 행정관으로부터 압력성 전화를 받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국중호씨의 전화 내용이 부드러웠고 압력으로 느껴지 않았다. 국중호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답변(별첨자료③⇒2001.8.13.연합뉴스),(별첨자료④⇒2001.8.14.경향신문)

     

    ④ 8/13(월)13:00. 구속영장실질심사시   “국 행정관의 전화에 대해 정치적 압력을 느꼈느냐”는 판사님의 질문에 대해, “그렇다, 그때는 느꼈다“라고 답변

     

    ⑤ 8/26(일) 수사기록 1882면 (6회 진술)  “전화 받는 순간 저로서는 매우 큰 심리적 부담이었고 압박이었다. 저야 업무상 항상 정도를 걸으며 성실하게 일하고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떳떳하였지만 상대가 청와대 민정비서실 국장이었으므로 압박감을 느꼈다”

     

    ⑥ 8/26(일) 수사기록 1883~5면 (6회 진술)   “지난번 국중호와 대질조사시 그로부터 압력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가 구속전 피의자신문시 영장담당판사 앞에서는 왜 압력을 받았다고 대답하였는가?” 라는 검사 질문에, 이상호는 “국 행정관의 전화를 받고 압력을 받았던 것이 맞다, 그런데 국중호와 대질조사시에는 국중호가 바로 옆에 있는데, 압력을 받았다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고 허위 진술

     

    ⑦ 9/11(화) 국회 건설교통위 인천공항공사 국감증인 출석시  “청와대로부터 어떤 압력을 받았느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이상호는 “국중호 행정관의 전화를 받고 상당한 외압으로 받아들였다”고 답변

     

    ● 사건의 발단 : 이상호와 '한겨레 신문' 인터뷰

     

    본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국내 유수의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이후, 현 정부와 언론이 날카롭게 맞서던 2001년 8월초로서, 당시 공항공사 개발사업단장이던 이상호씨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천공항 유휴지개발사업자 선정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이상호 피고인은 광주일고 동창이며 친구인 한겨레신문 정석구 경제부장을 통해 소개받은 사회부 김도형기자(T.019-310-7950, 본사건 보도후 편집국으로 문책 전보:본인주장)를 2001.8.4(토) 자신의 집 근처인 서울 인터콘티넨탈H 커피숍에서 만나,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의원의 처남인 ‘스포츠서울21’ 대표이사 윤흥열 및 위 ‘스포츠서울21’ 관계자들이 나서서 청와대인사(국중호행정관), 집권여당인사(김홍일의원실)에게 ‘스포츠서울21’이 참여하는 에어포트72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게끔 인천공항공사 측에 청탁 내지 압력을 행사함으로서, 그에 따라 강동석사장 및 청와대 관계자(국중호)가 자신에게 배점기준을 조정하라는 압력을 가해 왔다, 결국 이에 응하지 않자, 강동석사장이 자신을 보직 해임하였다”라는 취지의 보도자료(A4용지 10매 분량)를 만들어 기자에게 제공하여 한겨레신문에 보도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검찰은 이상호 피고인에 대해 ‘부채비율이 높은 공항공사의 사업방침을 어기고 위계로써 공항공사의 공정한 업무를 방해하였다’며 『공항공사 업무방해』혐의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구속 기소하면서도, 국중호가 공항공사 이상호 사업단장에게 ‘공정하게 해달라’며 한 전화 통화를 『직무상비밀누설』과『공항공사 업무방해』라는 혐의로 동시에 구속영장을 청구한것은 엄청난 모순이며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 이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 된 배경

     

    본 사건과 관련되어 국중호가 인천지검 특수부에 참고인으로 자진 출두하는 날(2001.8.10.금요일 13:00)은,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검찰에 고발된 동아(김병관사장), 조선(방상훈사장) 등 언론사주 들이 당일 오전 09:45분에 서울지검 특수부로 소환되는 날이었다.

    ※별첨자료⑤ : 8/11일자(토) 조선일보, 한겨레신문(방상훈,김병관 검찰출두장면)

     

    2달여 걸친 국세청의 언론사세무조사 이후, 現정부와 청와대를 향해 공격의 빌미를 찾고있던, 조․중․동을 비롯한 국내 유수의 언론들은, 검찰에 고발된 언론사주들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인천공항 유휴지개발사업자 선정」에 대통령친인척과 청와대가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한겨레신문(2001.8.5.밤-인터넷신문 및 가판) 보도를 근거로  일제히 대대적인 對정부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상호 사업단장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까지 동아일보(8.2, 8.3), 매일경제(8.3)⇒[별첨⑥] 등 중앙일간지를 비롯 도하 각 신문은 사설 등을 통해 “4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공항공사가 1729억원의 컨소시엄(에어포트72)을 제치고 325억원의 컨소시엄(원익)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의혹이 있다”며 (주)원익(삼성) 특혜설을 주장한는 논조의 보도를 하고 있었으나, 

    ※별첨자료⑥ : 동아일보사설(8/2,8/3), 매일경제 사설(8/3)

     

    이 문제로 인천공항공사에서 보직해임 당한 이상호가 자신을 향한 언론의 의혹어린 시선을 반전시켜 보려는 치밀한 의도 하에 제작한 보도자료(제목:대통령친인척권력형 외압의혹)를 근거로, 이를 사실관계 확인없이 기사화한 한겨레 신문과, 또한 이를 “대통령친인척 권력형비리사건”으로 규정한 중앙일간지를 비롯 도하 각 언론들이 이를 더욱 확대 보도한 사건이 이른바 “2001년8월 인천공항유휴지개발의혹사건”인 것이다.  

     

    (정작, 한겨레신문 배달판은 관련기사를 정정․축소 보도하였으나, 조선일보 ․ 중앙일보 ․ 동아일보 등은 이를 더욱 확대 재생산하여 연일 의혹을 부풀려 보도하기 시작함) 

    ※별첨자료⑦ : 8월6일~8월10일자 한겨레 ․ 동아 ․ 조선 ․ 중앙일보 기사 사본

     

    또한, 당시 언론은 ‘에어포트72’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는 ‘스포츠서울21’ 신문사 윤흥열 사장이 김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국회의원의 처남이며 차남인 아태재단부이사장 김홍업의 친구이었기 때문에, 국중호가 윤흥열을 돕기 위해 마치 청와대에서 압력을 행사하려한 의심이 있는 것처럼 보도하기까지 하였ㄷ

     

    ● 국중호 행정관에 대한 청와대 자체조사와 사직서 제출 이유

     

    2001.8.5일 한겨레신문(가판)을 시작으로 조․중․동을 비롯 전 언론에서 연일 대대적인 보도가 이어져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자, 부담을 느낀 청와대는 국중호 본인에 대한 엄정한 자체 조사를 실시 한 후, ‘민정비서실에 근무하는 행정관이 정부투자기관의 하나인 인천공항공사 측에 ‘공정하게 해달라’는 그런 전화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대통령께 보고한 후, 2001.8.8오후 청와대 대변인(박준영 공보수석)을 통해 공식 발표까지 하였다.

     

    다만, 언론에서 정부와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친인척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연일 공세를 취해 오는 만큼, 일단 사표를 제출한 후 추이를 지켜보자는 윗선의 방침에 따라 본인은 2001.8.9(목) 사표를 제출한 후, 8.10(금)13:00 인천지검 특수부에 참고인 자격으로 자진 출두하게 된 것이었다

     

    ● 업무방해 혐의와 인천지검 특수부 김경석 담당 주임검사의 표리 부동

     

    인천지검 트수부 김경석 검사는 2001.8.11.새벽 이상호와 국중호의 첫 대질 심문시 담당검사로서, 심문도중 이상호 피고인이 갑자기 “국중호씨 미안합니다, 국중호씨가 전화할 때 제가 압력을 받거나 그런 것이 아닌데, 기자 앞에서 표현하다보니 이렇게 파문이 커져서 정말 미안합니다”하고 말하자,

     

    깜짝 놀란 김경석 검사는 “이상호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 이상호씨가 기자들 앞에서 청와대 압력전화 받았다고 말해서 신문에 크게 보도된 것 아닙니까? 지금 이상호씨가 한말 조서에 그대로 넣어도 됩니까?”하자, 이상호는 “예 좋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게 사실이니까요”라고 대답하여 이를 수사기록(721-2)에 상세히 기록한 장본인이다.

    별첨자료⑧ : 검찰수사기록 721~722면(이상호 2회 진술) 내용 참조

     

    대질심문이 모두 끝난 후 김 검사에게 국중호는 “나는 이제 그만 집에 가도 됩니까?” 하자 김 검사는 “이상호에 대한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계시다가 가시지요” 하여 특수부 대기실 소파에 앉아 신문 등을 뒤적이며 오후 6시까지 대기하고 있던 중, 김 검사는 온데 간데 없고 고경희 검사가 나타나 “국중호씨 제방으로 가서 차 한잔 합시다” 하고는 “윗선 방침에 의해 긴급체포를 하게 되었습니다. 휴대폰 주시고 여기서 좀 더 계셔야 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 밤 9시경 김경석 주임검사가 나타나 “아무래도 피신을 받으셔야 하겠습니다.”하여 본인은 “피신이 뭡니까?” 하자, 김 검사가 “피의자 심문조서를 말합니다” 하여 본인은 펄쩍 뛰면서 “뭐라구? 피의자 심문조서를 받아? 내가 무슨 혐의로 피의자란 말인가? 이상호가 김검사 앞에서 나에게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하는 것을 직접 듣고 대질 조서에 기록까지 남긴 사람이 지금 생사람 잡으려고 작정을 한 거야?”하며 거칠게 항의하자,

     

    김 검사는 “국중호씨, 제 직업이 검사입니다. 국중호씨는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 좋은 보고서를 많이 쓰는 것이 임무였듯이 저는 검사로서 범인을 많이 만드는 것이 임무입니다”하고 말하여, 나는 “김 검사, 당신 지금 그 말 분명히 책임져. 죄가 안 되면 그만이지, 뭐라고? 범인을 많이 만드는 직업이 검사라는 직업이라구?” 강하게 항의하자, 김 검사는 “미안합니다. 그 말은 제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하고 사과까지 하는 등,

     

    다음날 새벽녘까지 “피신을 받자”는 검사와 “못 받겠다”는 나와 신경전이 계속되었으나, 외부에서 친구가 들여보낸 김영환 변호사(인천)라는 사람으로 부터 “긴급체포는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는 것인데, 일단 피신을 받는 것이 좋겠다. 진술을 무조건 거부하면 구속영장실질심사시 담당 판사로부터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지위에 있던 사람으로서 매우 좋지 않은 인상을 주어 더욱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이상호와의 대질심문 내용으로 보아 별 문제는 없을것 같으니 일단 피신을 받으시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말을 듣고 김 검사에게 심문을 받겠다고 통보 하였다

     

    이에 김경석 검사는 “국중호씨 참 잘 생각 하셨습니다. 진술하시는 대로 그대로 기록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라고 하여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기 시작하였다. 진술이 끝날 무렵 김 검사는 “정말 말씀을 참 잘 하시네요. 걱정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하고 위로의 말까지 한바 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2001.8.13(월) 오후 6시 구속영장 실질심사후 영장이 떨어져 인천구치소에 수감된 후 어느 날, 검취(보강수사를 위한 검사 소환) 과정에서 본인은 인천지검 특수부 고경희 검사에게 “어떻게 돼서 내 구속영장이 떨어진 것입니까?. 검사 대질심문엣서 이상호가 나에게 압력전화 받은 일없다, 미안하다 라고 사과까지 한 사실이 조서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하고 묻자,

     

    고경희 검사는 “아니, 정말 모르고 계셨어요? 영장실질심사 때 이상호씨와 국중호씨를 분리심리 했잖아요, 이상호씨를 먼저 심리할 때 이상호가 청와대 국중호씨로 부터 전화를 받고 압력으로 느꼈다고 진술 번복했어요. 국중호씨 심리할 때는 이미 상황이 다 끝나버린 상태였어요, 나는 국중호씨가 그걸 알고있는 줄 알았읍니다”라고 말해 주는 것이었다.

     

    ● 인천지방검찰청장 이범관 검사장의 눈물

     

    국중호가 2001.8.10(금). 13:00경 인천지검 특수부에 참고인 자격으로 자진 출두하자 김경석 주임검사는 “오셨습니까. 지금 이상호씨에 대한 조사가 진행중이니 대기실에서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우리 지검장님께서 청와대에 근무하실 때 국중호씨 도움 많이 받았다고 하시면서 오시면 잘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며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참고)

     

    ※참고로 당시 인천지검장 이범관 검사장과 국중호는 1998년 3월 김대중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 민정비서실에 동시에 발령 받아 약 1년6개월 간 함께 근무한 바 있으며, 검찰 내에서 공안 통으로 이름난 이범관 검사(당시 서울지검 1차장검사)가 당시 청와대 김중권 비서실장의 천거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예정되자, 동교동을 비롯한 정치권 내에서는 “민주인사를 탄압하던 공안검사 출신이 어떻게 국민의 정부 청와대 첫 민정비서관으로 올수 있느냐!”며 엄청난 견제와 항의가 빗발 쳤으나,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국중호는 어려움에 처한 이번관 비서관을 적극 변호하고 감싸 주었던일로 이범관은 청와대에 근무하는 동안 국중호에게 이를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음 

     

    2001.8.13(월)18:00경 인천지법으로부터 본인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이범관 인천지검장은 수사를 담당했던 별관(특수부)의 윤석만 특수부장실로 내려와 국중호를 불러놓고는, 윤석만 부장과 김경석 주임검사 등이 지켜보는 있는 바로에서 국중호의 두 손을 붙잡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야이 사람아! 자네하고 나하고 이게 무슨 악연인가?  허어~ 참, 그게 영장이 떨어지네이~. 허어~ 참, 그런 게 영장이 다 떨어지네이~”하고 혀를 차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면서 미안해 하였다.

     

    이에 국중호는 이범관에게 강력하게 대들면서 “이범관이!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 뭐야? 그런게 영장이 다 떨어지네~, 아니 이상호가 검사 앞에서 나에게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까지 했는데도, ‘안되면 좋고 되면 말고’ 식으로 재미 장난으로 영장청구했단 말이야? 내가 긴급체포 되었다고 하기에 당신과 전화통화 한번 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요구해도 담당 검사들이 안들어 주더니 이제 와 나타나서 뭐라고? 허어~ 그런 게 영장이 떨어지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하고 대들면서,

     

    “이범관이 당신도 청와대 근무해 봐서 내 위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나? 내가 이런 일에 압력 넣을 위치라도 되나? 공정하게 해달라는 전화 한 통화 한 것이 무슨 놈의 업무방해고 비밀누설이야--, 당신도 청와대 근무시절 행정고시 동기생들로부터 어떤 인사 청탁이 들어오면 관련 기관에 전화하여 “전화가 왔었다고라도 전해 달라”는 면피성 전화하는 것 나도 많이 봤어 !” 등등 엄청난 항의와 피눈물로 절망스런 시간을 보내다가,

    (이범관은 사시/행시 양과 합격자로 행시 동기생들의 인사청탁 등 민원에 매우 시달려왔음)

     

    이범관 인천지검 검사장이 권하는 담배한대 피우고는 “국중호, 정말로 미안하다. 내 뭐라 할말이 없다. 조금만 고생해라”는 그의 말을 뒤로 한 채 수갑을 차고 포승줄에 묶여 인천구치소로 실려 가야만 했다. (이때 이범관은 교도관들에게 포승줄 풀고 정중히 연행하도록 지시하기도 함)

     

    인천지검 특수부의 체면유지를 위한 수사발표

     

    국중호 본인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이 막상 떨어지자, 몹시 당황한 인천지검 특수부는, 공소유지 차원에서 국중호에 대한 추가범죄 혐의를 찾기 위해, 본인은 물론 온가족들에 대한 계좌추적/압수수색 등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였으나 추가 혐의점을 찾아내지 못하자, 양덕준 등의 허위자백으로 이미 드러난 2000불(263만원)을 유일한 수사실적으로 발표하며 특수부의 체면을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2001.8.30(목) 인천지검 권태호 차장검사가 18일 동안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날 “두 사람 구속후 18일 동안 그 토록 야단법석을 떨며 수사 한 결과가 겨우 국중호의 2000불 뇌물수수가 전부란 말입니까?”하는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쏟아지자, 매우 곤혹스러워진 권태호 차장검사는 말문을 닫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야단법석을 떤 것은 당신들 언론이니까 당신들이 알아서 수사해 보시오”하고는 갖고 있던 보도자료를 탁자에 내 던지고는 기자실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 경향신문(인천주재) 한대광기자 증언(T.011-9702-9124)

     

    ● 검찰의 2000불 뇌물수수 혐의 조작

     

    비록 1심 재판부에서부터 무죄를 선고한 부분이지만 국중호에 대한 검찰의 「2000불 뇌물수수 혐의」추가와 관련하여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 부분을 알아야만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진행시켜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1.8.13.구속이후 매일 검찰 소환조사를 받아오던 국중호는 8.18일 오전9시 구치소를 나온 이후 하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검찰청 뒤편 구치감(독방)에 대기하다, 다음날 새벽녘(8.19일 새벽4시40분경)에 특수부 김경석 검사 방으로 안내되어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갑덕․양덕준․김영재 3인이 초췌한 모습(옷․얼굴․머리모양 등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음)으로 수사관에 이끌려 벽쪽에 등어서는 것이었다.

     

    이에 본인은 깜짝 놀라면서 “어- 너희들 여기 있었어?”하고 말하자, 김 검사는 “국중호씨! 당신은 아무말 말고 가만히 있어요-”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한․양․김 3인을 향해 “한갑덕씨, 양덕준씨, 김영재씨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요, 지난 6월중순경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사무실에 국중호씨가 왔을때 2000불 준 것 맞지? ”하고 큰소리로 묻자, 3인은 본인을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에 본인은 정신이 번쩍 들면서 “뭐가 어쩌고 어째- 이것들 봐라-, 이것들이 쥐약을 처먹었나?” 하고 소리를 지르자, 김 검사와 수사관 2명이 동시에 “국중호씨 가만히 있어요!” 하고 큰소리로 윽박지르는 것이었다. 국중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갑덕이 너-, 내눈 똑바로 보고 얘기해 이놈아!” 하고 소리를 지르자, 한갑덕은 국중호의 얼굴을 힐끗 한번보고는 “검사님, 봉투를 만드는 것은 보았지만 봉투를 주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하고 말하자, 김 검사는 직원에게 3인을 데리고 나가게 한 뒤, 김 검사와 수사관은 본인에게  더 이상 묻지도 않은 체 잠시동안(약2~3분)에 불과한 대질장면을 무려 약 30분이 넘도록 검사가 구술하는 대로 수사관이 질문/답변하는 형식(수사기록 1414면~1419면)으로 타이핑을 치고는, 다시 본인에게 2000불 받은 것을 인정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본인은 “김 검사, 대질을 하려면 밝은 대낮에 차분히 대화를 시키면서 해야지, 말 한마디도 못하게 하면서 그게 무슨 대질이야? 한갑덕이는 돈 주는 것 보지 못했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시간이 새벽 5시가 넘었는데 나도 지금 어지럽고 정신이 없는데, 내가 보니까 저놈들은 지금 모두 제 정신이 아녀-, 난 2000불과는 금시초문으로 무관하니까 장난칠 생각 하지마-”하자

     

    김 검사는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 뒤 한갑덕을 데리고 들어와서는 “한갑덕씨 똑바로 얘기해, 국중호씨 한테 돈주는 것 봤어 안 봤어?” 하고 추상같이 질문하자, 한갑덕은 잘 들리지도 않는 힘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예 봤습니다”하고는, 방방 뛰면서 소리 지르는 국중호를 뒤로한 체 수사관에 이끌려 방을 나가버렸다. 이것이 돈을 주었다는 3인과 본인과의 대질심문 장면 전부이다.

     

    검사가 작성한 본인에 대한 2001.8.19일자 뇌물수수 부분 진술조서는 본인은 물론 3인의 말은 몇마디 묻지도 듣지도 않은 상태에서 검사와 수사관이 상의 하면서 일방적으로 문/답 형식으로 작성한 검찰조서이다.

     

    그러면 일자 무식쟁이도 아닌 사람이 왜 조서 말미에 이를 모두 인정하는 날인(수사기록 1420면)을 하였느냐고 의아해할지 모르나, 그때 상황은 위 3인은 물론 국중호도 정신이 없었을 뿐더러, 금품을 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아무 걱정하지 않았고 또한 검사들이 이렇게까지 악의적으로 뇌물수수 혐의로 조작해 가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8.19일 새벽 ‘뇌물수수’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검찰은 국중호의 수첩기록, 음식점매출전표, 2000불 환전일자 등이 서로 맞지도 않을뿐더러, 참고인은 물론 정신을 차린 3인 모두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나서자 몹시 당황한 가운데, “청와대 행정관 뇌물수수 혐의 추가”라는 발표로 인천지검 특수부의 체면을 살려보고자 그토록 많은 시간 동안 온통 혈안이 되어 있었음을 수사기록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수사가 마무리 되어가던 8.28일(화) 밤 국중호는 고경희 검사에게 “고검사! 지금도 저놈들이 나에게 2000불 주었다고 말하나? 주었다고 하면 나와 다시 대질시켜 줘” 하고 말하자, 고 검사는 “지금은 국중호씨 한테 돈주었다고 안합니다, 2000불과 국중호씨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까지 말하기도 하였으나,

     

    8.30일(목) 최종 수사결과 발표시 검찰은 “국중호 前청와대 행정관 2000불 뇌물수수 혐의 추가기소”라고 발표하여, 이러한 사실을 다음날(8/1) 신문을 통해 구치소 독방에서 알게 된 국중호는 그만 기절 직전까지 가는 충격을 받고, 혈압이 올라 의무실 신세까지 져가면서 인천지검 특수부의 비양심적인 처사에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구속영장실질심사 당시부터 1심재판 기간 동안 국중호를 변론해준 특수부검사 출신 구본승 ․ 변환철 변호사(청와대 신광옥 민정수석이 수임하여 보낸준 변호사)는 본인에게 “국중호씨에 대한 2000불 뇌물수수 혐의 추가는 아마 특수부 검사들이 이범관 인천지검장을 속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엉터리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없다”면서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김경석 검사는 국중호에 대한 구속영장이 떨어진후 추가 소환조사 초기에 “국중호씨 우리 쉽게 해결합시다. 얼마를 받고 이런 큰 사업의 청탁을 받으셨습니까. 검사앞에서 조금도 떨지않고 뱃장 좋으신 것을 보면 엄청난 돈을 받으신것 같은데 내가 금액을 대폭 줄여주겠습니다”고 말하는 등 거래를 제의를 해오기도 하였다. 

     

    ● 신광옥 前민정수석 등이 밝힌 국중호 구속과정의 미스터리

    (신광옥 前민정수석, 조근호 前민정비서관, 박영수 前사정비서관 등이 공히 밝힌 내용)

     

    2001.8.12(일) 07:00경 청와대 신광옥 민정수석, 조근호 민정비서관, 박영수 사정비서관 등 3인은, 경기도內 한 골프장으로 골프를 치려고 한차에 동승하여 가던 도중, 8.10일(금)13:00 참고인 자격으로 자진 출두한 국중호가 인천지검 특수부에 긴급체포 상태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보고 받고는, 깜짝 놀라 골프 약속을 취소하고 즉시 차를 돌려 서울로 돌아와 강남 르네상스H에 룸 하나를 잡아 캠프를 차리고는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천지검 특수부는 2001.8.11(토) 오후 국중호를 긴급 체포한 후 이 같은 사실을 가족이나 청와대는 물론 외부에 일절 알리지 않았고, 심지어 국중호의 학교 후배인 이세영변호사(서울)가 걱정이 되어 2001.8.11일 밤 9시경 인천지검 특수부에 찾아와 자신의 고시2년 후배인 고경희 검사에게 국중호와의 접견을 요청하자, 고 검사는 어떻게 국중호가 긴급체포된 사실을 알고 왔느냐고 깜짝 놀라면서 끝내 접견을 시켜주지 않았던 사실이 후에 드러나기도 함.

     

    라마다르네상스H 에 방을 잡은 신 수석 일행은 먼저, 인천지검 이범관 검사장에게 전화하여 “왜 참고인 자격으로 자진 출두한 국중호를 붙잡고 있느냐, 국중호는 청와대 사정비서실 자체조사에서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대변인 성명으로보 발표하고 대통령님께도 보고된 일이다. 국중호가 사표를 내게 된 것은 언론의 무차별적인 보도로 인해 희생양이 된 것이다. 국중호를 당장 귀가 시켜라”며 엄중 항의하자, 

    ※별첨 자료① : 新東亞 2002년 3월호 168~169면 참조

     

    이에 이범관 인천지검장은 “선배님!(신광옥은 이범관의 사시2년 선배) 국중호는 민정에서 저와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제가 더 잘 압니다. 신총장(신승남 검찰총장)님께 말씀 좀 잘해주십시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신광옥 증언)

     

    이에 이상한 징후를 감지한 신광옥 수석은 신승남 총장에게 전화하여 ‘국중호 행정관 문제는 어른(대통령)께도 보고된 사안’임을 설명하면서, 귀가조치를 주문하자 신 총장은 "어이~ 그 문제라면 인천에(인천지방검찰청) 맡겨 놓세~ "라고 만 거듭 말하였다고 한다.

     

    이에 신광옥 수석은 분명히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최경원 당시 법무장관에게 전화하여 “장관님! 요즘 언론에서 시끄러운 인천공항 사건으로 인천지검에서 청와대 행정관 하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신 총장의 지시가 내려간 것 같은데 인천지검에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장관님께서 좀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이 만들어낸 사건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어른(김대통령)께도 보고까지 드린 일입니다. 이런 일로 청와대 근무자가 희생양이 된다면 앞으로 아무 일도 못합니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경기도 인근에서 법무부 출입기자들과 골프 라운딩을 하고 있던 최경원 장관은 신 수석의 전화를 받고는, 기자들이 들을까봐 골프를 중단한 체, 3홀을 패스시키면서 신승남 검찰총장을 전화로 급히 찾아, “청와대 민정직원이 인천지검에서 긴급 체포되었다는데 알고 있느냐” 묻자, 신 총장은 “장관님, 그것은 인천지검에다 맡겨 놓기로 하였습니다.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하는 짧은 대답만 되풀이하였다고 하며, 최 장관은 이와 같은 내용을 곧 바로 신 수석에게 통보해 왔다고 한다.

     

    이에 몹시 답답함을 느낀 신 수석은, 자신이 광주지검 근무시절 부하 직원으로 데리고 있었던 인천지검 권태호 차장검사(現 안산지청장)에게 창피스러움을 무릅쓰고 전화하여, “권차장, 너 나 다시는 안 볼 꺼야? 왜 국중호를 잡고 있는 거야? 빨리 귀가 조치 안 할거야?” 하면서 질타하자, 권 차장은 “아이구~ 선배님, 잘 아시면서 왜 저보고 이러십니까. 제가 여기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고요” 라고 대답하며 자신의 곤란한 입장을 하소연하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신광옥 수석은 당시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화하여 “신승남 검찰총장이 누군가의 청탁을 받고 지금 장난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장님께서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 시피 이 문제는 어른(김대통령)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까지 한 바 있고, 이런 일로 청와대 행정관이 희생양이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아무 일도 못합니다”하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한광옥 비서실장은 신승남 총장에게 전화하여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신 총장은 “실장님. 그 문제는 인천지검에 맡겨 놓기로 하였습니다. 별일이야 있겠습니까?”하고 똑같은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국중호를 귀가시키기 위한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신광옥 수석 일행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뒤,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국중호를 빼내기 위한 방안으로 마땅한 변호사를 찾던중, 특수부 검사출신으로 서울동부지원 관내에서 개업중인 구본승▪변환철 두변호사 두 명을 청와대로 불러 대책을 논의 한뒤, “내일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국중호를 반드시 빼내어야 한다”는 주문과 함께 밤 9시경 인천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신병이 확보되어 하루밤을 세우고 있는 국중호에게 보낸바 있다.

     

    국중호를 찾아온 두 변호사는 당직하는 형사들에게 소리가 들릴까봐 귓속말로 “고생이 많습니다. 청와대 신광옥 민정수석이 보내서 왔습니다. 내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국중호씨를 꼭 빼내라는 신 수석의 부탁을 받고 왔습니다” 하고는 그 동안 본인이 검찰에 출두한 후 있었던 상황에 대해 메모를 하며 몇가지 묻고는 돌아갔다.

     

    두 변호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국중호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친인척인 윤흥열과 김홍일의원실 보좌관 박상우 등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국중호를 희생양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으나, 신광옥 민정수석이 변호사까지 보낸다는 사실에 영문을 몰라 한 동안 어리둥절하기도 하였다.

     

    ● 국중호의 긴급체포를 지시한 권력의 비선라인 실세는(?)

     

    지금까지 드러난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참고인 자격으로 자진 출두한 국중호가 뒤늦게 긴급 체포되고,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과정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권력 비선라인의 어두운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국중호는 구속후 한달여만에 보석으로 구치소를 나온후, 수십 차례의 재판을 받아오면서, 이 사건과 연관된 수많은 인사들의 사무실과 자택 등을 직접 방문 면담 등을 통해 「국중호 구속 과정의 미스터리」를 집요하게 추적 해부한 결과 다음과 같은 음모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면담인사 : 신광옥 前민정수석, 한광옥 前비서실장, 이범관 前인천지검장, 박영수 前청와대사정비서관, 조근호 前민정비서관, 신승남 前검찰총장, 수사검사, 취재기자 등

     

    ◆<음모1>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 ⇒ “국중호를 붙잡아 둬라”

     

    2001.8.10(금)13:00 국중호 행정관이 인천지검 특수부에 참고인 진술차 자진 출두하자, 김대통령 차남 김홍업 아태재단부이사장 측으로 부터 신승남 검찰총장에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국중호를 좀 잡아둬야 할 것 같다”는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이에 신 총장은 “한번알아보겠다”하고는, 인천지검 이범관 검사장에게 “국중호를 좀 붙잡아 둬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이에 이범관은 이상호와 국중호의 대질심문 내용을 보고 하면서 “곤란하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신 총장은 “여론을 잠재우려면 어떻게 해서든 국중호를 좀 붙잡아 둬야 할것 같다”며 거듭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신광옥,신승남,이범관 증언 종합)

     

    이에 이범관은 신 총장의 지시를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윤석만 특수부장에게 국중호에 대한 피신을 받도록 하였다고 하며, 훗날 이범관은 국중호에게 검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국중호와 이상호와의 대질심문 내용으로 보아 영장이 반드시 기각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술회하기도 하였다.

     

    <음모2>

    김대중대통령의 차남 김홍업과 국중호와의 악연 

     

    국중호가 이 사건으로 청와대를 나온 것은 2001.8.9(목) 이다. 2002년 김대통령의 두 아들(홍업․홍걸)이 잇따라 구속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국중호는 청와대 『친인척비서실』의 인적쇄신을 유일하고도 강력하게 주장해온 당사자로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들이 구속된 후 김대중대통령은 청와대 참모회의 석상에서 “아들들의 문제를 보고 받지 못한 것이 참으로 유감스럽다”는 말을 한 것으로 신문에 보도된 바 있다. 국중호는 동교동계 정치권에 근무하면서 김 대통령을 당선시켜 청와대에 모시고 들어갔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김 대통령 취임초기부터 2002년 중반까지 대통령친인척비서실의 이재림비서관(1급. 국민의 정부 정권 말기 재경부 산하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역임)은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의원의 절친한 친구(배제고 및 공군장교 동기)였으며, 친인척비서실의 담당 행정관 역시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의원의 개인비서 출신인 김길성 이었다.

     

    국중호는 이른바 “동교동계 정치권 출신 민정국장”으로서, 대통령의 아들들을 물론 DJ측근 및 아태재단 임원들의 동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친인척비서실에 대통령 아들들의 심복들이 들어 앉아 그 기능이 마비된 상태임을 잘 알고 있는 저는 민정의 고유기능인 “대통령의 눈과 귀가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친인척은  물론 아태재단 임원들이나 측근들의 부적절한 동태를 면밀히 관찰, 윗선에 보고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겐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대통령 친인척 관련 보고서는 민정수석실에서 대통령께 직보하는 것이 원칙이나, 1998년 취임이후 2002년 초순까지 친인척비서관이 먼저 보고서 내용을 인지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면서 내용이 변질되거나 유야무야 되는 일이 많았음.

     

    그 한 예로, 2000.1.13. 개각 당시 신임 김윤기 건교부장관 임명과정에 대통령 차남 김홍업 아태재단부이사장이 깊게 개입된 사실을 확인한 저는, “국민의 정부 들어 가장 잘못된 인사”라는 내용의 보고서(별첨자료⑨)를 작성하여 대통령께 올렸으나, 작성자가 국중호라는 사실이 대통령 차남인 아태재단 김홍업 부이사장 측에 알려지는 바람에 국중호는 청와대 민정비서실에서 퇴출 될 위기에 까지 이르렀던 일이 있었다.

    ※별첨자료⑨ : 「신임 김윤기 건교부장관 임명 관련 여론 동향」(사본)

     

    이 보고서로 인해 국중호는 당시 강남구 태해란로 리치칼슨H 인근에 있던 아태재단 김홍업부이사장 개인사무실에 호출되어 그의 측근인 친인척비서실 김길성 행정관을 대동하고 찾아가 그런 보고서는 ‘민정비서실 고유의 기능이며 활동이다’는 등의 해명과 함께 경위를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이 있었다.

    이 보고서 파동으로 인해 국중호 행정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던 김홍업은, 2001.8월 이른바 ‘인천공항유휴지의혹사건’으로 국중호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라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두하자, 2001.5월 신임 검찰총장 임명 당시 자신이 부친 김대중 대통령께 강력하게 천거한 바 있는 신승남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하여 「국중호를 좀 잡아둬야 할 것 같다」라는 압력을 행사하였다고 한다.

    ※별첨자료⑩ : 2001년 5월 신승남 신임 검찰총장 임명 당시 김홍일, 김홍업, 이수동 등 김대중 대통령 측근 실세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신승남 차장을 강력하게 천거한 내용 수록 (新東亞 2003년2월호 191~192면 참조)

      

    [별첨자료 목록]

    별첨자료① : 2002년新東亞3월호<인천공항유휴지개발특혜사건의진실>조성식

    별첨자료② : 대통령비서실 업무현황 사본(2002년 국정감사 보고자료)

    별첨자료③,④ :2001.8.13(YTN), 2001.8.14(경향신문)

                   <구속영장실질심사 직전 이상호가 기자들에게 한말  “국중호씨의 전화 내용이

                    부드러웠고 압력으로 느껴지않았다. 국중호씨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답변한 부분이 신문,방송보도됨>

    별첨자료⑤ : 2001.8.11일(토) 조선, 한겨레 신문 기사 

                   <방상훈, 김병관 등 세무비리 언론사주 검찰 출두장면>

    별첨자료⑥ : 동아일보 사설(8/2, 8/3), 매일경제 사설(8/3)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상호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까지

                    동아, 매경 중앙지에 1729억 원의 컨소시엄(에어포트72)을 제치고 325억 원의

                    컨소시엄(원익)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에 대해 의혹이 있다”며

                    (주)원익 특혜설을 주장하고 있는 신문보도>

    별첨자료⑦ : 8월6일~8월10일 한겨레․조선․동아․중앙 기사 사본

                    <8/5일 저녁 한겨레신문 가판보도 이후, 정작 한겨레신문은 8/6조간이후

                    관련기사를 정정․축소 보도하며 냉정함을 유지하였으나, 조선․중앙․동아 등은

                    이를 더욱 확대 재생산하여 의혹을 더욱 부풀려 보도하기 시작함>

    별첨자료⑧ : 검찰수사기록 721~722면 (이상호 2회 진술) 내용

                    <국중호와 이상호가 대질 심문시 이상호가 국중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기자를 원망하는 발언 부분>

    별첨자료⑨ : 청와대 民情 보고서 사본

                    <신임 김윤기 건교부장관 임명 관련 여론동향 청와대보고서사본>

    별첨자료⑩ : 新東亞 2003년2월호 191~192면 참조

                    <신승남 검찰총장 임명 과정에 김홍일, 김홍업, 이수동 등

                     여권실세들이 준동한 내용 수록> -조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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