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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길법무장관, 신승남검찰총장 반대하다 낙마]-新東亞 2003년2월호
  • 조회 수: 3812, 2012-03-19 22:06:41(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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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東亞 2003년 2월호> [심층취재]

    김정길 법무,'신승남 총장 카드' 반대하다 낙마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 ‘호남검찰' 5년의 피 튀긴 파워게임

     

    김대중 정부에서 호남 출신으로 고위직에 오른 검사들 중엔 유난히 화를 입은 사람이 많다. 김태정 신승남 임휘윤 신광옥 김대웅 박주선…. 협조와 경쟁 속에 호남검찰 독주시대를 열었던 그들의 영욕과 파워게임의 실체.

     

    1998년 2월 하순 김대중 정부의 초대 민정비서관에 이범관 서울지검 1차장검사가 내정됐을 때 일이다. 동교동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검사에 대해 부정적인 평이 담긴 정보보고서가 나돌았다. 이 보고서는 호남 출신의 모 검찰간부가 동교동계 실세와 가까운 당 관계자에게 건넨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이검사의 사시 선배인 이 검찰간부는 뒷날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다 화(禍)를 입었다.

     

    '신동아'가 최근 확인한 이 보고서는 검찰 내 호남 대 비호남 출신의 파워게임이 정권 초기부터 치열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 요지는 다음과 같다.

     

    ▲사시14회 출신인 이범관 민정비서관 내정자는 법무비서관으로 내정된 박주선 검사의 사시 2회 선배로, 김중권 비서실장이 지난 법무비서관 인사시 자신의 인맥인 이OO OO지검 차장검사를 임명해 사정권(司正權)을 장악하려 했으나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김태정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핵심인물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박주선 법무비서관을 견제하는 한편 각종 정보라인을 장악하기 위해 박주선 검사의 선배인 이범관 검사를 민정비서관으로 적극 천거한 것이다.

     

    ▲이 민정비서관 내정자는 지난 15대 대선 당시 안강민 서울지검장 밑에서 공안사건 수사를 총지휘한 실무책임자였다. 그가 초임검사 시절부터 철저한 반DJ 성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검찰 내에서 널리 알려진 일이다.

     

    ▲지난 대선 때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자 검찰 내부에서는 '이제 이범관은 좀 쉬어야 할 사람', '제일 먼저 옷을 벗어야 할 사람이 이범관' 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내정자는 삼성그룹 회장과 고교 동기생으로 매우 절친한 친구지간인데 이 그룹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과 중앙일보는 대선 당시 반DJ 진영의 선두에 섰다.

     

    ▲李내정자는 중앙일보 회장과 대학 동문으로 깊은 유대를 맺고 있다. 그에 따라 국가 주요 정보가 삼성그룹과 주앙일보에 유출될 위험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범관 검사의 청와대 입성을 저지하기 위한 흠집내기용 보고서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가 공안통이라는 건 사실이다. 6공 때 대검 공안1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지내고 김영삼 정부 말기에 서울지검 1차장검사로 대선 관련 업무를 지휘한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리기라도 하듯 현 정부에서도 대검 공안부장을 역임했다.

     

    동교동계 정보보고서

     

    경기 여주 출신인 이범관 검사는 이처럼 청와대 입성 당시 동교동계 일부로부터 심하게 견제를 받았지만 현 정부에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대검 공안부장, 인천지검장을 거쳐 지난해 2월 서울지검장에 올랐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수사과정에 김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골프 회동을 주선한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던 그는 그해 8월 광주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좌천성 승진이었는데, 청와대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고 김홍업․홍걸씨를 구속한 데 따른 보복성 인사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비호남 출신인 이고검장이 잠깐이나마 서울지검장을 지낸 데 대해 법조계 주변에서는 '국회 법사위 수석전문위원(1993~95년)과 청와대 민정비서관(1998~99년)을 지내면서 정․관계 인사들과 두루 친분을 쌓아 정치 감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라는 평이 있다. 실제로 이고검장은 청와대 민정비서관 시절 김홍일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의 검찰은 흔히 호남검찰로 불린다. 이유는 호남 출신 검사들이 '대약진', 검찰의 주요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인 함승희(사시 22회) 의원은 호남검찰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제의 근원은 인사다. 호남 출신 검사를 요직에 많이 앉힌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능력과 자질이 없는 일부 검사를 단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중용한 것이 문제다.'

    물론 과거 정권에서는 영남 출신 검사들이 요직을 독차지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는 TK(대구․경북), 김영삼 정권 때는 PK(부산․경남) 일색이었다. 강지원(사시 18회) 변호사는 '특정 지연이나 학연을 가진 검사들이 요직을 장악한 현상은 TK․PK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 꼬집었다.

     

    '과거 정권 때 호남 출신 검사들은 푸대접, 충청 출신은 무대접을 받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정권교체 후 이러한 악습이 고스란히 되풀이됐다. 단적인 예로 검찰의 황태자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1과장에 누가 앉는지를 보면 안다. 과거 호남 출신 검사들은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고 소외됐다. 현 정부에서 TK․PK 출신이 그런 처지다. 또 과거엔 비교적 한직인 고검에 호남 출신이 많이 몰려 있었는데, 현 정부에서는 영남 출신과 경기고 출신이 유난히 눈에 띈다.'

     

    ● 동교동계 실세들, 신승남 지원

     

    호남검찰 내부의 갈등과 알력이 표면화된 것은 2001년 5월에 있었던 검찰 인사 때다. 2년 임기를 채운 박순용 검찰총장 후임을 두고 여권과 검찰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진 것. 야당인 한나라당은 신승남씨의 총장 취임을 막기 위해 연일 공세를 폈다. 신씨가 검찰총장이 될 경우 사법․경제 사정기관을 모두 호남이 장악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국정원장은 전북 전주 출신의 신건씨였고 경찰청장도 전주 출신의 이무영씨였다. 또 안정남 국세청장은 공교롭게도 신승남씨와 동향으로 전남 영암 출신이다.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전북 김제 출신. 게다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엔 광주 출신의 신광옥씨가 앉아 있었다.

     

    당시 법무장관은 김정길씨(사시 2회․전남 신안․조선대부속고). 김장관은 2년간 검찰 실세로 군림해온 신승남 대검차장이 검찰총장이 되는 데에 반대했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김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박총장 후임으로 신승남 대검차장보다 세 기수 아래인 임휘윤 부산고검장을 천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장관의 인사안이 알려지면서 대검에는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사시 12회인 임고검장이 총장에 오를 경우 9회인 신차장은 물론이고 10․11회의 고위간부들이 모두 퇴출돼야 하기 때문.

     

    2년 전인 1999년 5월 박순용씨가 검찰총장에 취임했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법무장관에 오른 김태정씨가 자신보다 네 기수 아래인 사시 8회의 박순용 대구고검장을 총장에 임명하자 5․6․7회는 물론 동기인 8회까지 포함해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가 13명이나 옷을 벗는 '대학살극'이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2년 전의 상황은 재현되지 않았다. 김정길 법무장관의 인사안이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정을 잘 알 만한 검찰의 전 고위간부에 따르면 김홍일 의원과 김홍업씨,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 등 여권 실세들이 신승남씨의 검찰총장 임명에 적극 찬성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김대통령은 '신승남 카드'를 탐탁찮게 여겨 며칠 동안 결재를 미뤘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자 마지못해 사인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증언이다.

     

    석연찮은 신광옥 구속과정

     

    이용호 게이트의 불똥은 신승남 총장에게도 튀었다. 동생 신승환씨가 이용호씨로부터 6000여 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 수사를 맡은 대검 중수부는 승환씨가 이용호씨 회사의 계열사 사장으로 영입됐던 점을 들어 이 돈의 성격을 급여와 스카우트비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차정일 특검수사팀은 로비자금이라고 판단, 승환씨를 구속했다. 야당의 사퇴 공세에도 꿋꿋이 버티던 신총장은 결국 동생이 구속된 다음날 사표를 냈다. 신씨를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신씨는 동생을 불러 호되게 추궁했다. 그런데 동생이 로비와 관련 없는 돈이라고 완강히 부인하자 진짜 죄가 안 되는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며 신씨를 동정했다.

     

    신승남 검찰총장의 사퇴는 호남검찰 독주체제의 붕괴를 뜻했다. 그런데 사퇴만으로 사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특검팀은 이용호씨한테 5000만원을 받은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를 조사하는 과정에 신승남 총장과 김대웅 서울지검장이 이수동씨와 통화하면서 수사 관련 사항을 발설한 혐의를 잡았다. 두 사람은 그해 7월 공무상비밀누설과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기소되기에 이른다.

     

    임휘윤씨가 이용호 게이트에, 신광옥씨가 진승현 게이트에 물려 낙마한 후 유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꼽히던 김대웅씨마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음으로써 호남검찰은 만신창이가 됐다. 김씨는 지난해 2월 이명재 검찰총장 취임 직후 광주고검장으로 좌천성 영전을 했다. 지난해 8월 한직이자 한참 후배들이 가는 자리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밀려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옷을 벗지 않고 있다.

     

    2001년 11월에 불붙은 진승현 게이트는 김은성 국정원 2차장,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 권노갑씨 등 쟁쟁한 권력실세들을 하루아침에 낙마시킨 사건이다. 그해 12월 진승현 게이트 수사과정에 발생한 신광옥 법무차관 구속사건은 호남검찰 내부의 갈등 양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 1월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옷로비사건 수사를 잘 마무리한 공으로 차관급인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영전한 신광옥씨는 열성적이고 깔끔한 일 처리로 김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청와대 근무 시절 한광옥 비서실장과 남궁진 정무수석, 권노갑씨 등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씨가 친정인 검찰로 돌아온 것은 이용호 게이트로 신승남 검찰총장이 곤경에 빠져 있던 2001년 9월. 검찰의 2인자인 대검차장을 원했으나 검찰 수뇌부와 권력실세들의 견제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씨 구속 과정엔 석연찮은 점이 있다. 첫째 의문은 검찰 간부 중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신차관의 혐의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해 알렸다는 점이다. 2001년 12월11일 '중앙일보'는 신차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이던 2000년 8월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앞둔 MCI코리아 진승현 회장으로부터 골프가방에 든 1억원을 전달받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오보였다. 검찰 수사결과 신씨가 진씨로부터 직접 돈을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에 따르면 진씨가 1억원을 건넨 사람은 신씨가 아니라 그의 고문 노릇을 했다는 민주당 당료 최택곤씨다. 또 최씨가 신씨에게 진씨 구명로비 명목으로 전달했다는 돈은 6차례에 걸쳐 300만원씩 총 18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의문은 신씨와 최씨 혐의에 대한 검찰의 이중잣대다. 신씨는 최씨에게 1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검찰은 최씨에게 뇌물공여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진씨한테 로비자금 명목으로 1억원을 받은 사실만 기소하고 신씨한테 1800만원을 준 데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이다. 최씨한테 돈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신씨는 검찰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최씨와 '뒷거래'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비호남 출신으로 검찰 고위직을 역임한 한 변호사는 이른바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폈다.

     

    '신광옥이 억울할 만도 하다. 나도 겪어봐서 알지만 그런 종류의 기사가 나오는 경위는 뻔하다. 검찰 내부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린 거지. 그리고 한번에 300만원씩 줬다는데 그 정도야 민정수석에게는 뇌물이 아니라 떡값이지 않은가.'

     

    ● ‘신광옥 죽이기’ 의 주체는 누구인가 ?

     

    대표적인 갈등사례가 2001년 8월 인천지검이 수사한 인천공항 유휴지 특혜개발사건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신광옥씨는 이 사건에 연루된 민정수석실 소속 국중호 행정관(3급)에 대한 사법처리를 둘러싸고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청와대 자체 조사를 통해 국씨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한 신수석은 신총장과 사시 두 기수 후배인 이범관 인천지검장에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신총장은 '인천지검에 맡기자'는 원칙론을, 이지검장은 '여론 잠재우기' 명분을 내세워 신수석의 요청을 뿌리쳤다. 이 일로 신수석과 신총장은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 한광옥 비서실장도 김대통령에게 국씨가 억울하다고 보고하는 등 신수석을 거들었으나 신총장의 냉정한 태도로 무위에 그쳤다.

     

    신광옥씨의 항의가 아니더라도 김홍일 의원의 이름이 거론된 그 사건에서 국씨는 희생양에 가까웠다('신동아' 2002년 3월호 참조). 재판과정에서 인천지검 특수부가 무리하게 수사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수수, 공무상비밀누설, 업무방해 등 세 가지. 인천지법은 지난해 8월 이 사건 1심 판결에서 뇌물수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업무방해 혐의만 인정했다. 국씨는 곧바로 항소했는데 그의 변호인단은 완전한 무죄판결을 낙관하고 있다.

     

    함승희 의원은 '당시 검찰 내부에서 은근히 암투가 벌어졌다. 신광옥씨는 파워게임의 희생양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함의원 말대로 검찰 주변에는 신씨 구속이 차기 검찰총장 경쟁구도와 관련된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신씨가 구속되기 전 여권 일각에서 동생 문제로 곤경에 처한 신승남 총장을 퇴진시키고 '신광옥 또는 임휘윤 카드'를 검토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씨 구속 당시 수사 지휘선상에 있던 검찰 간부는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 박상길(현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서울지검 3차장검사, 김대웅 서울지검장, 신씨와 사시 동기인 김각영(현 검찰총장) 대검차장, 신승남 검찰총장 등이다. 누군가가 언론에 신광옥씨 혐의사실을 흘렸다면 이들 중 한 명이거나 수사팀(서울지검 특수1부)인 셈이다.

     

    김태정, 김옥두 의원 안내로 일산행

     

    여기서 잠깐 김태정씨 얘기를 해보자.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김씨가 구속까지 당한 것은 호남검찰 영욕의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검찰의 전직 고위간부는 김씨의 구속을 두고 '업보' 라고 표현했다.

     

    그는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부친의 고향이 전남 장흥인 데다 여수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광주에서 고등학교(광주고)를 졸업했기에 호남 인맥으로 분류된다. 사시 4회 선두주자였던 그는 김영삼 정부 때도 호남 출신으로는 드물게 '잘 나가던' 검사였다. 대검 중수3․1과장, 서울지검 특수3․1부장, 대검 중수부장을 거친 전형적인 특수통이었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부산지검장 시절부터 두드러졌다. 민주계 인사들과 자주 어울린 그는 1995년 법무차관에 임명됐다. 그 무렵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씨와도 친분을 쌓았다. 1997년 8월 그가 검찰총장에 임명되자 검찰과 정치권 주변에서는 그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한보사태로 구속된 현철씨에 대한 선처를 맹세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김태정씨가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들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둔 상태에서 한나라당의 폭로로 불거진 DJ비자금사건 수사를 유보시킨 일이었다. 이를 두고 YS의 지시설도 있지만, 김태정 검찰총장이 결정하고 YS가 묵인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수사유보 발표문 작성에 관여한 박주선 의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김태정 총장으로부터 사전에 보고를 받고 '검찰 판단대로 하라' 며 방관했다는 것.

     

    대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정 검찰총장은 남들 눈을 피해 경기도 일산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집에 찾아갔다. 동향(전남 장흥)인 김옥두 의원과 이귀남(사시 22회․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검 범죄정보관리과장이 연결고리가 됐다. 김태정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자금 수사 유보는 오로지 내 소신에 의한 결정이었다. 대선이 끝난 후 그쪽에서 보자는 연락이 왔다. 김옥두 의원의 안내로 일산에 가 DJ를 만났다. DJ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강지원 변호사는 이를 두고 '검찰총장이 비공식적으로 대통령 당선자와 만난 것 자체가 문제' 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김태정 총장은 김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검찰 조직을 자신의 뜻대로 끌고갈 수 있었다. 청와대에서는 자신이 아끼는 후배인 박주선 법무비서관이 호흡을 맞춰주고 있었다. 거칠 게 없던 김총장은 정치인 사정에 대해 표적․편파수사라고 반발하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를 공개석상에서 비난하는 등 정치적 발언을 마구 쏟아냈다. 정치검찰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도 했다.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발행일: 2003 년 02 월 01 일 (통권 521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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